약물은 시대상을 표현하고 개인을 표현한다. 누군가에겐 삶의 절실한 의학적 희망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표현 방법의 일종이다.
약물은,
..으로 작용한다.
플라시보는 생략하고, 화학적 약리작용은 약물 본연의 치료적 기능을 말한다. "시대의 우울을 증거하는" 카테고리는 설명하기가 좀 애매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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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시절의 노동자들에게는 타이밍이라는 시대의 우울을 대표하는 각성제가 있었다. 청계천과 구로공단의 복층 공장은 밤이고 낮이고 미싱이 돌고, 프레스 기계가 쿵쿵 소리를 냈다. 전태일은 자신의 가난한 봉급을 쪼개어 어린 여공들에게 박카스를 돌렸다. 타이밍이 우울한 시대의 상징이었다면 박카스는 소소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박카스는 90년대에 들어서 치어업의 상징이 되었다. 피로 해소와 각성제로서 약리적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치료보다는 치어업의 개념이 강했고 현재도 그러하다.
파고다 공원으로 불리던 종로 탑골공원, 종묘 주차장 일대에는 박카스 아줌마가 등장했다. 물질풍요의 시대는 모두 거짓말인듯, 외롭고 고달픈 노년들이 박카스를 매개로 수요자와 공급자가 됐다. 박카스 아줌마는 남산 자락 어딘가에 있다는 게이 매춘부를 지칭하기도 했다. 게이 매춘부의 박카스는 값싼 치어업의 이미징에서 이름을 차용한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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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의 입장이 있다. 그들은 언제나 시대의 피해자로 보이고 싶은 구석이 있기 마련이기에, 각성제의 이미징으로서의 박카스도 필요했을 것이다.
이해찬 세대, 내신지옥, 수능, 학력고사, 선지원 후시험, 본고사 시대 할 것없이 수험생들은 언제나 교육정책의 피해자였다. 박카스나 타이밍은 그 본연의 화학적 약리작용 외에도 시대의 우울을 드러내고 싶은 플라시보제제이자 이미징제제이기도 했다.
한 편, 군사정권말기의 수험생들은 명백히 유해한 각성제인 타이밍을 복용했다. 그들 역시 학문이나 경쟁에 대한 치열함을 증거하고 표현하고 싶은 의지가 있었다. 당장의 경쟁에서 약물이 필요한 한 편으로, 청계천 노동자들로부터 계승된 시대의 우울을 공유하는 기분을 획득하고 싶은 욕망도 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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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전 세계의 청춘들은 대마초를 시작했다.
예술가들은 예술혼의 부족을 마약에서 찾았고, 독재정권은 담배밖에 안 피는 어떤 예술가가 영웅이 되는 것이 두려워 집안에 대마초를 흘려놓고 검거했다.
어떤 예술가는 정신병원을 전전하다 마약과다로 죽었고 어떤 예술가는 예술혼의 과잉으로 자살을 했다. 감수성 짙은 어떤 팬들은 자살하는 예술가를 뒤쫓았다.
히피들에게 대마초는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반전 운동에 지쳤거나 지루해졌을 무렵, 우드스탁 뒷자리에서는 음악을 시각화 할 수 있다고 믿는 청춘들이 시각적 청각을 경험했다. 러브 앤 피스.
향정신성 약물이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종교적 의미를 가진 어떤 철학자들이 드디어 LSD를 시작했다. 수십년 수련한 고승의 명상단계를 한방에 유도해준다는 LSD트립은 유체이탈을 경험하고 싶은 영적인 사람들의 위험한 취미가 되었다. 어떤 사람은 진짜 유체이탈을 경험했고 어떤 사람은 그저 영적인 존재로 보이고 싶어했다. 그리고 어떤 연구자들은 위험한 연구를 계속했다.
일본에서는 맨션, 온 집마다 에어컨, 마이카로 이르는 위대한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중이었다. 세상사가 한없이 지루해진 청춘들은 글램록, 포르노, 디스코, 마약, 환각파티에 대한 열망을 청춘이라 불렀다.
90년대에 이르러 모든 과거를 추억으로 날조하고 미화해도 부끄럽지 않은 시절이 왔고, 서양에서는 "벨벳 골드마인" 일본에서는 "한없이 투명한 블루"와 같은 영화와 소설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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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블루컬러에게 타이밍이, 시대의 피해자였던 수험생에게는 박카스가, 우울한 예술가와 세상이 허무한 청춘들에게 대마초가 있었다면 스트레스의 화이트컬러들에게는 위장약이 있었다.
80년대 화이트컬러들에게는 위장약이 유행과도 같았다. 모든 소설에서는 화이트컬러의 스트레스를 위통으로 표현했다. 말단 샐러리맨들은 4.4.4 효과가 필요했고 지긋한 간부들은 숙면을 위해 잔탁이 필요했다.
세상이 살만해지자 위장약 광고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피로회복제 광고가 다시 등장했다. 세상이 더 살만해지자 화이트컬러들의 애호 약물은 숙취해소제가 되었다. 새로운 밀레니엄은 피로와 숙취가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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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컬러중에서도 육체적으로 고단한 유사 화이트컬러들은 복합 제제가 필요했던 것 같다. 일상적인 숙취와 사람 비위 맞추는 스트레스를 겸비한 영업사원도 그러했고 산업체 상고를 다니는 동생들을 거느린, 방위 복무를 하면서 야간에 불법 학원강사를 뛰는 가난한 남매의 장남 역시 복합제제가 필요했다.
이들은 박카스와 게보린 혹은 박카스와 아스피린을 이른 새벽 공복에 복용하였다. 두뇌를 깨울 수준의 혈당치를 급속으로 획득할만한 시간이나 돈이 없던 그들은, 초코우유보다 박카스와 게보린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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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이나 상아탑의 고뇌를 표현하기 위해 아스피린 광고가 등장했다. 보건 기사 속의 아스피린은 세계 경제경기 싸이클처럼 건강에 해악한 약물이 되었다가 이로웠다가 해악했다가를 반복했다.
건강에 해악하거나 이롭거나 관계없이 소설 속 교수와 의사들은 예외없이 아스피린과 위장약을 털어넣었다.
시대가 흘러 타이레놀 광고 카피가 모든 것을 표현했다.
"당신이 머리 아픈 건 당신이 더 열정적이기 때문입니다"
블루컬러들은 생존 자체를 위해서 약물을 복용했고, 하위 계층의 화이트컬러들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약물을 복용했다. 그리고 어떤 화이트컬러에게 두통약이란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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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의적 기능을 담긴 유사 약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담배다. 여성작가들이 모종의 행복한 웃음과 함께 신사임당과도 같은 표정의 사진을 찍을 때. 남성 소설가들은 예외없이 담배를 물고 희끗한 새치머리를 데코레이션으로 주름깊은 흑백사진을 찍었다.
체게바라의 담배가 앤디워홀적으로 양산되었고 그는 사상적 아이콘이 아닌 패션과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사상적 발자취보다는 자유를 열망하는 청춘의 이미지 메이킹, 그것이면 족했다. 청춘들의 체게바라는 고학력 좌익밴드라는 RATM과 다를 바 없었다.
어쨌거나 담배는 홍콩 느와르의 영웅들이 계속해서 인용했고, 주윤발의 미소에서 출발하여 양조위의 깊고 슬픈 루저의 흡연에서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해외 올로케 한국 뮤직비디오속의 영웅들은 담배를 물고 총맞은 애인을 끌어안고 울다가 찌질함의 정점을 찍었다.
이제 약물의 약리적 효능과 시대의 우울은 폼생폼사로 압축된 듯 보였다. 자유와 열정과 자아에 대한 어떤 과잉은 희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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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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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가엾은 청춘은 시대의 발전과 관계없이 점점 늘어난다. 수면제 수집에 대한 경험이나 동맥에 상흔, 우울로 가득찬 토막글들을 훈장처럼 여기며 무용담을 펼치는 청춘들이 점점 늘어난다. 그 사이를 비집고 진짜 환자들은 자신의 병세를 증명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