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문화_

레디플레이어 원

2017/08/20

pic

1.

작년 네이버 데뷰 행사에 부스 참가 했던 에어콘 출판사에서 샀다. 물론 나는 관계자이므로 강매당해서 샀다. 하하하하. 1년을 비닐도 안 뜯고 있다가 요 며칠 사이에 읽었다.

2.

안정효 작품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나에게 어떤 인식의 체를 만들어준 작품이었다. 80년대가 대중문화의 캄브리아 폭발기, 그리고 그 정점이었다면 90년대는 모든 것을 포스트 모던으로 퉁쳐서 분해 해체하고 재조립 하는 시절이라고 여겼다. 이 모든 것을 자본이 통제하는 자기 복제와 생산성 중심의 시대가 열렸으며 누구든 하늘앞에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변명을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창작자들은 자신의 아바타가 헐리우드 키드는 아닌지 머리를 싸매고 자아비판을 반복해야 하는 시절이 도래한 것이다.

세월이 흘러 나는 이제 그런 혹독한 비판자에서 조금 너그러운 비판자로 물러났다. 안정효의 원작 소설은 기억도 나지 않고 서점에선 절판이며, 영화화된 각본만이 유통되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여전히 뇌리에 박혀 있는데 너그러운 비판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때때로 독고영재의 심정이 된다. 너 이 새끼 이거하거 저거하고 그거는 여기하고 저기에서 가져온거지! 그러자 최민수가 말한다. "아니거등."

3.

레디 플레이어 원이 Ready player one. 즉슨 동전 넣는 오락기에서 나오는 인써트 어 코인, 뉴 챌린저스 컴스 인 같은 문장이었다는 것을 책을 읽을 때까지 몰랐다.

4.

이 소설은 일단 끝내주게 재미가 있다. 나는 독고영재의 기분으로 비판을 하려던 마음을 접어야 했는데, 아마도 쇼미더머니나 슈퍼스타케이를 줄기차게 까면서도 재밌다고 낄낄거리며 보는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심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고만 까야겠다는 반성을 했다. 소설 자체의 플롯은 간단하다. 거대 온라인 게임의 참여자가 게임사 회장의 어마어마한 유산을 그의 유언에 따라 차지하기 위해 이러고 저러고 하는데 음모도 있고 어찌저찌 해서 주인공이 돈도 사랑도 명예도 정의도 얻는다는 이야기다. 전체 흐름은 영화화를 노렸고, 스필버그가 만든다는 블록버스터에 아주 잘 어울린다. 이 책도 그렇거니와 아마도 사람들은 어떤 비판을 하고 어떤 찬사를 날리며 무조건적인 흥행이 따라올 것이라 예상된다. 그리고 나도 아무말 잘난척 대잔치에 합류 중이다.

평론가들은 이 책의 문학적 가치를 인문학 병신체로 좔좔 써내려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도 현학적 글쓰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이 책에서 그런 미덕을 찾기는 좀 아햏햏하다. 그러나, 이 소설을 위해 뺑이친다고 부단히 취재하고 조사하고 그 노고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문득, 작품의 완성도를 따지면 영화화 잘 되는 댄브라운과 비교를 해볼만한데, 어니스트 클라인의 승리다. 예를 들어 디지털 포트리스를 생각해보면,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을 뿐더러 책도 버렸다.

어떤 이는 새로운 유형의 소설이고 20세기말 서브컬쳐의 총화라고 평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칭찬하긴 했지만, 서브컬쳐의 총화라는 명예들은 아마도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라이트 노벨들이 가져가야 합당하다고 본다.

5.

스필버그의 영화로 나오면 이제 사람들은 덕력 인증 레이스에 뛰어들 것이다. 이는 흡사 이 소설의 배경과도 같은 느낌이 될 것이다. 즉, 등장인물들이 서로 덕력을 뽐내는 장면들이 영화 밖에서도 재연되지 않을까. 물론 그런 장면들은 루리웹 같은 어둑한 곳에서 일어날테니 크게 이슈화 되는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소설에 흩뿌려진 수많은 오타쿠 소재와 밈들, 맥거핀과 까메오, 서브컬쳐의 떡밥 같은 것들을 내가 먼저 발견했다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경쟁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6.

닷핵 (1화 보고 전 시리즈를 포기했다), 소드아트 온라인 (중반부에서 포기했다)이 생각난다. 트론의 세계관, 울티마 온라인, 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 어디서 차용했는지 두 번만 생각해보면 나도 전문가덕후 행세 할만한 떡밥들이 무차별적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80년대에서 90년에 이르는 서브컬쳐를 인용한 것처럼 글을 썼으나 실제로는 이 소설 자체가 헐리우드 키드의 산물이다. 예컨대, 망막 투사 디스플레이와 모션 캡쳐 반응형 디바이스를 볼 때마다 패트레이버 극장판의 디바이스 부팅-캘리브레이션 장면을 생각한다. 그 보다 더 정밀하게 묘사한 작품을 보지 못했다. 과연 스필버그는 오시이 마모루를 넘어설 수 있을까? 안 될 것이다. 스필버그는 첨단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하지만 오시이 마모루의 첨단 문물은 그냥 어제와 오늘의 일상 생활에 가깝다.

7.

근미래의 삶에 대한 묘사에 있어서 작가는 80년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나머지, 현 시점으로부터 작중 배경까지의 시간갭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는다. 참으로 속편한 발상인데 비판을 얻어먹거나 말거나 분량과 복잡도를 생각할 때 어쩌면 영리한 계산인 것 같다. 오아시스 왕회장이 구축해둔 과거의 던전들을 볼 때마다 우라사와 나오키 20세기 소년의 친구월드를 보는 듯 하다. 시간이 정지한 채로 박제된 추억의 가상 세계라는 것은 꽤 섬뜩한 집착이다.

8.

안노 히데아키가 에반게리온으로 90년대까지의 애니메이션 산업의 총집편을 만들었듯이, 이 소설은 아마도 서브컬쳐를 중심으로 한 21세기 초의 총집편에 해당할 것이다. 필수 요소, 밈, 서브 컬쳐 떡밥 콜렉션의 광역 합성을 통한 궁극의 창작물인 것이다. 건버스터와 에반게리온이 패러디와 오마쥬와 차용의 비빔밥이긴 하지만 안노가 거장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듯이, 작가와 스필버그도 그 영광을 얻을 듯 하다. 출발부터가 영리했으며, 취재와 조사로 이뤄냈고, 스필버그가 완성할 것이다.

8.5

나는 스필버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족타령이 심해서 몰입에 방해가 된다. 과연 이 작품에는 어떻게 가족을 또 넣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첨단 문물을 지나치게 미화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이것은 신기한 과학의 정수라네 일일이 자랑하는 느낌이 든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나왔을 때, 군인들이 장비한 야투경을 묘사할 때 오바 없이 건조한 묘사라서 좋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스필버그라면 뿅뿅 소리에 화면 날라다니고 배터리가 떨어졌네 뭐 그런 장면들이 나올 것 같고, 일본 애니라면 씰데없는 오퍼레이터 가이드 음성 같은 것이 우르르 나올 것 같은데 그게 싫다.

9.

결론적으로 이 소설은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첫째, 저거 이거 그거 요거 나도 알어.
둘째, 하 저걸 저렇게 쓰네, 저건 일본 애니가 먼전데, 저게 뭐야.
셋째, 재밌는데 어째.

끗.

10.

어썸믹스 즉,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70년대를 추앙하는 방식과 약간의 연대감이 느껴지는데, 사실 난 가오갤 빠들의 나도 가오갤 빠라고 밝히는 어떤 모종의 맨스플레인을 싫어하는 쪽이다. 아마도 이 소설과 영화에서도 같은 현상이 조금은 관측되지 않을까. 내가 그렇듯이.





공유하기













[t:/] is not "technology - root". dawnsea,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