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소설 아직 안 읽었습니다. 넷플릭스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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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도 외계문명이 거짓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넌센스일 수 있으나 가상 게임 속의 인간 컴퓨터 장면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실마리가 있다.
인간 컴퓨터들이 사열한 모습은 실리콘 웨이퍼 상의 패턴 모습을 연상시킨다. 즉, 이들은 문명의 생명 군집 자체가 클러스터 컴퓨터임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모든 개체가 생각의 속도로 의식을 공유한다고 가정하면, 거짓말을 숨길 수 없다. 이런 설정은 다른 SF에서 오버마인드와 따까리 부대로 표현하는 문명에서도 그 방식을 유추할 수 있다. ALU가 오버마인드이고 특수 개체는 IP, 대부분은 CUDA 코어의 형태이다. 일개미의 생활 양식도 비슷하다고 우겨볼 수 있다. 의식은 공유되고 거짓을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삼체 문명은 거짓말이라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
가혹한 환경 속에서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다면, 전체주의적인 통짜 컴퓨터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육체의 부실함을 버리고 실리콘 속의 안락함 속에서 전체주의적 컴퓨팅 활동 그 자체를 문명이라 여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천원돌파 그렌라간의 초고도 문명도 비슷하다. 전체주의 하면 일단 거부감부터 들지만 SF 소설들의 외우주 강적들은 대부분 전체주의의 제정국가 모습을 띄고 있다. 외우주 개척의 척박함 속에서 전체주의를 택했고 그게 우아하고 일사분란하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를 보면 인간의 탐욕 때문에 그런 체제는 지속 가능성이 없는 것이 확실하다. SF 작품들에서는 이를 유전자 개조 등을 통해 감성이나 욕망을 박탈하거나 (마크로스 젠트라디) 종교적 초지성 컴퓨터에 의존하거나 (고질라 신 OVA), 초이성 인류로 개조하거나 (성계의 전기 시리즈의 아브) 하는 작업을 통해 민주주의 문명의 천태만상을 제거한다.
그렇다면 예할매의 최초 통신에서 경고를 응답한 집단은 누구일까. 흰개미 거대 군락의 모습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흰개미 거대 군락은 주변 군락이 같은 군락이라는 동질성을 유지하는 한 편, 어느정도 떨어진 군락은 거대 군락의 일부이면서도 동질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적으로 여길 때도 있다고 한다. 삼체 문명의 의식 공유 범위가 상대적으로 먼 군집 중에는 지구에 경고를 보낼 수 있는 군집도 있을 것 같다. GPU 내부에서도 효율성을 위해 메모리 배리어나 격리 블록, 공유 메모리나 캐시 공유, 캐시 격리 같은 개념은 존재한다. 같은 실리콘 내에서도 이짝 스트림 프로세서에서 하는 작업을 저짝 스트림 프로세서는 모를 수 있다.
..라고 하면 넌센스가 풀리긴 풀리는데 나는 왜 이럴까. 일이나 하자.